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몬 볼리바르 (문단 편집) === [[라틴아메리카/독립|라틴아메리카 독립운동]] === 시몬 볼리바르는 1799년에서 1802년까지 [[멕시코]]와 [[프랑스 혁명]]의 열기에 끓어오르던 [[유럽]]을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깨닫고 특히 스페인의 지식인인 후작 우스타리스와 만나면서 풍부한 학식을 갖추었다. 또한 볼리바르는 마드리드에서 외삼촌인 페드로 델토로[* 그래도 이 사람은 다른 외삼촌인 카를로스 팔라시오스보다는 온건했다.]의 딸 마리아 테레사와 결혼하여 귀향하는데 아내가 [[황열병]]으로 9개월만에 쓸쓸히 죽는다. 그 사건이 있은 이후 시몬 볼리바르는 재혼하지 않았다.[* 단 일부 애인 등은 있었다.] 유럽으로 돌아가 이곳저곳을 떠돌던 볼리바르는 스승 로드리게스를 만나 [[로마]]의 [[아벤티노 언덕]]에서 그 유명한 '산상 선언'[*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을 얻을 때까지 내 팔에 자유를 주지 않겠다로 시작되는 유명한 선언이다.] 을 외쳤다. 귀향한 시몬 볼리바르는 [[스페인령 아메리카 독립 전쟁|독립운동]]으로 잔뼈가 굵은 노장군 프란시스코 미란다(1750~1816)와 안드레스 베요와 함께 1811년 베네수엘라 제1공화국을 세웠다. 이 공화국은 스페인 섭정 행정부에서 '유색인종'에게 인정했던 투표권과 참정권을 부정하고 일정 이상 재산을 갖춘 이만 참정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했고 스페인 왕이 명했던 여러 유색인을 배려한 법을 없애려고 하자 당시 베네수엘라 인구 80% 이상을 차지하던 '비백인'들이 반발했고 이것은 1812년 지진을 기점으로 폭발하였다. 발렌시아에서 행정부의 조치에 반발하여 '유색인종'이 저항을 선언하자 제1 공화국은 전원 백인으로 구성한 군대를 보내 저항을 억눌렀으나, 스페인 왕정과는 달리 인정사정없는 [[백인우월주의]]를 표방하는 공화국에 반발한 절대 다수 베네수엘라 사람들의 지원으로 왕당파가 세를 얻었고 그러한 왕당파의 카라카스 점령으로 볼리바르는 퀴라소 섬으로 망명해야 했다.[* 미란다는 스페인으로 끌려가 옥사했고, 베요는 영국으로 망명했다가 훗날 [[칠레]]에 정착해서 법률학자 및 국립대학 총장이 된다.] 그 후 [[콜롬비아]] 카르타헤나로 옮겼다가 여기서 '카르타헤나 선언' 으로 베네수엘라와 [[누에바그라나다 공화국|누에바그라나다]][* 현재 콜롬비아와 [[파나마]] 지역]의 독립을 선언하고 1814년 8월 4일 3년 만에 카라카스에 재입성하여 '해방자' 라는 칭호를 받는다. 그러나 그의 부대는 경험 부족과 물자 부족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려 연전연패해서 [[아이티]]로 결국 망명했다. 당시 남부 아이티의 대통령이던 페숑은 흑인 노예의 독립을 조건으로 1,200명으로 구성된 부대를 지원했으나 볼리바르는 계속 패배한다. 이 난관을 타개하고자 볼리바르는 야노스[* 베네수엘라 남부 초원지대.] 군벌인 호세 안토니오 파에스와 손을 잡고 게릴라전을 벌여 스페인군을 이기고 이어서 1819년 피스바 산을 넘어 콜롬비아로 쳐들어간다. 여기서 볼리바르는 [[영국군]]과 [[아일랜드]]군의 지원을 받아 [[누에바그라나다 독립 전투|콜롬비아를 정복]]하고 '그란 콜롬비아(Grand Colombia) 공화국'[* 현재 베네수엘라, 누에바 그라나다(콜롬비아와 파나마), 키토([[에콰도르]])를 포괄하는 지역]을 선포한다. 잠시 휴전으로 병력을 추스른 볼리바르는 1821년 6월 24일 카라보보 전투에서 승리하고 키토에서 스페인군을 격파하고 키토를 함락시킨다.[* 키토는 에콰도르의 수도가 된다.] 그 후 [[아르헨티나]]와 [[칠레]]에서 스페인 세력을 물리친 [[호세 데 산 마르틴|호세 데산 마르틴]]과 과야킬 회담[* 이 회담은 역사상 밝혀진 것이 거의 없는 미스터리한 회담이다. 확실한 건 두 사람이 좋게 끝내지는 못했다는 것뿐이다.]을 하고서 산 마르틴이 유럽으로 망명하자 부장인 안토니오 호세 데수크레를 보내 아야쿠초와 후닌 전투에서 부왕(副王, Viceroy)[* 본국 군주를 대신하여 한 지역을 통치하는 직책으로 다른 나라의 [[총독]]에 해당한다. 참고로 19세기 독립하기 전 멕시코를 비롯한 중앙아메리카 일대는 [[누에바에스파냐]] '부왕령(領)' 이었고 페루에는 페루 부왕령이 설치되어 있었다.]을 사로잡는 성과를 올리면서 [[페루]]마저 함락시킨다. 이로써 [[남아메리카]] 대륙에서 스페인 세력들이 지배력을 영구히 상실하였다.[* 우루과이는 1830년에 브라질로부터 독립했으므로 여기서 제외된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